1981년, 경제학의 이단아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1946~)가 1981년 발표한 논문은 경제학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논문의 주장: "주가의 실제 변동성은 기업의 내재가치 변동성보다 훨씬 크다." 당시 지배적 이론인 효율적 시장 가설(EMH)은 주가가 항상 적정 가치를 반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러는 데이터로 반박했습니다. 기업의 실제 배당금 변동성(신호)보다 주가 변동성(반응)이 5배 이상 크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장 참여자들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과잉 반응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잉 반응의 원인을 실러는 "심리"와 "이야기(Narrative)"에서 찾았습니다. 이 연구가 노벨경제학상(2013)의 출발점이 됩니다.
CAPE 비율: 10년을 보는 눈
실러의 가장 실용적인 기여는 CAPE(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 비율입니다. 흔히 '실러 PER'이라고 불립니다. 일반 PER이 최근 1년 이익을 기준으로 주가를 평가하는 반면, CAPE는 과거 10년 평균 실질 이익으로 주가를 평가합니다. 단기 이익의 변동성을 제거해 더 안정적인 밸류에이션 기준을 제공합니다.
역사적 CAPE 평균은 약 16~17배입니다. 2000년 닷컴 버블 최고점에서 CAPE는 44배까지 올랐습니다. 실러는 이를 근거로 시장 과열을 경고했습니다. 6개월 후 버블이 붕괴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CAPE는 27배였습니다. 역사적 평균보다 높았지만 2000년만큼 극단적이지 않았습니다. 차별적 위험 신호였습니다.
내러티브 경제학: 이야기가 경제를 움직인다
실러의 2019년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은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핵심 주장: "경제적 사건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있어, 이야기(Narrative)가 전통적 경제 지표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실러는 내러티브가 바이러스처럼 전파된다고 설명합니다. 전염병학(Epidemiology)의 감염 모델이 이야기의 확산에도 적용됩니다. 기본 재생산지수(R0)가 1을 넘으면 전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처럼, 강력한 내러티브도 특정 임계점을 넘으면 사회 전체로 퍼집니다.
2000년 닷컴 버블의 내러티브: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지금 사지 않으면 기회를 놓친다." 이 이야기는 강력했고, 타당성도 있었습니다(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만든 가격 수준(CAPE 44배)은 정당화될 수 없었습니다. 내러티브의 진실성과 그것이 만든 가격 수준은 별개입니다.
버블의 5가지 징후
실러는 역사적 버블들을 분석해 공통적인 5가지 특성을 도출했습니다.
- 급격한 가격 상승: 펀더멘털 변화를 훨씬 초과하는 가격 상승이 자기 강화 사이클을 만듭니다. 오르기 때문에 사고, 사기 때문에 오릅니다.
- "이번엔 다르다" 내러티브: 전통적인 밸류에이션 기준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확산됩니다. "PER은 이제 의미 없다", "이 회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 새로운 시대 이야기: 기술 혁신이나 경제 구조 변화가 영구적 번영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퍼집니다.
- 과잉 거래와 높은 레버리지: 거래량이 급증하고, 빚을 내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 일반 대중의 시장 참여: 투자에 관심 없던 사람들이 "나만 빼고 다 번다"는 인식에 뛰어듭니다.
내 포트폴리오에 실러의 교훈 적용하기
실러의 프레임워크를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방법:
- CAPE 주기적 확인: 연 1~2회 현재 CAPE가 역사적 평균 대비 어느 수준인지 확인합니다. CAPE가 30배 이상이면 주식 비중을 약간 낮추는 것을 고려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타이밍 도구는 아니지만, 위험 수준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지금 지배적 내러티브 파악: "현재 시장을 지배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물어봅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이미 가격에 얼마나 반영됐는지가 핵심입니다.
- 버블 5징후 점검: 현재 시장에 위의 5가지 징후가 몇 개 나타나는지 확인합니다. 3개 이상이라면 경계해야 합니다.
- 내러티브와 가격을 분리: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훌륭하다"는 내러티브와 "지금 이 가격에 사는 것이 합리적이다"는 판단을 분리합니다. 실러의 핵심 교훈은 좋은 이야기가 나쁜 가격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